2022.08.15(월) 새벽기도회
본문 – 에스라 8:15-23
<본문>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본문 해설>
바벨론 1차 포로들은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에스라와 함께 2차 포로 귀환을 진행하십니다. 이에 에스라는 귀환할 자들을 아하와 강가에 집결 시킵니다. 본문 앞 14절까지를 보면 돌아갈 자들의 수효가 남자만 1,500명 가까이 됩니다. 문제는, 그 가운데 성전에서 봉사하고 제사에 수종 들 레위 자손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1차 귀환 때도 제사장들은 사천 명이 넘게 귀환했지만, 레위인들을 불과 30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레위인 입장에서 보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포로로 끌려 온 바벨론 땅에는 이스라엘이 제사드리고 예배할 수 있는 성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레위인들은 당장에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직업을 가져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나름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실 돌아간다고 해도 바벨론 생활보다 더 나을 게 없기에, 황폐된 예루살렘에서 다시 성전 봉사와 제사에 수종 드는 삶을 굳이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에 에스라는 귀환 자들 중에서 대표를 선발해서 레위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가시뱌 지방(은 세공업 발달)으로 보내 레위인들을 설득합니다. 그 결과 250명이 넘는 레위인들이 다시 소집됩니다.
에스라가 왜 이렇게 레위 사람들을 데려가려고 애를 쓰고 있겠습니까? 느헤미야 8장을 보면,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문제는 모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때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돕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울며 엎드립니다.
지금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왜 성전을 재건 하게 하셨는지, 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지, 이스라엘이 부름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황폐하고 고생스러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로 보내실지언정, 자기 백성과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교회들이 세상의 비웃음과 손가락질로 짓밟히는 포로기와 같은 시대에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를 교회 되게 다시 회복의 길로 돌아오는 역사를 이끌고 계십니다.
이 회복에 있어서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시설이든지, 프로그램이든지, 교회 운영의 행정력이든지 부족하고 미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말씀다운 진리 사수에 있어서는 조금도 모자랄 수 없고, 조금도 부족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계시 된 말씀 그 자체에서 가감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인기와 기호와 선호도에 따라서 교세를 확장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입맛에 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오직 말씀을 사수하고, 말씀만을 따라 교회를 교회 답게 세우고 재건하고, 회복해 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레위인들의 모습처럼, 굳이 이 고생스러운 길, 말씀만 수종 들며 나아가는 이 좁은 길로 간다고 해서 내 맘과 같이 이 세상 속에서 교회의 입지가 견고해지고 확고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사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적당히 타협하고 좋은 게 좋다는 대로 가면 쉽게 갈 수도 있습니다. 더 잘 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22절과 같이, 포로 귀환을 허락한 바벨론 왕에게 기대어서 안전한 귀환을 위해서 군사도 요청하고 재정도 요청하면서 쉽게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빨리 짓고 우리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우리 편한 대로 회복시켜 보겠다고 해서 모래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말씀 안에서 말씀대로! 교회를 교회되게 사수하고 세우고 회복하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18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힘과 능력을 애써 끌어 오지 않습니다. 당장에 위협과 위험과 손해가 뻔히 보여도, 바벨론의 보병과 마병을 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어리석어 보이고 미련해 보이고 무모하고 무능해 보인다고 혀를 찬다고 해도, 오히려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만을 도움으로 구하는 기도의 자리에서 고난과 고통을 끌어 안고 겸비하며 엎드리는 이유는, 이 길을 고집하고, 이 길을 고수하고, 이 좁은 길의 고생과 불편을 감수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오늘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는 선한 손의 도움으로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1. 교회를 교회 되게 세우고 회복되는 일이 절실한 이 시대 속에서 모든 회복의 동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고 미련해 보여도, 말씀만 붙들고 이 말씀대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함께 엎드려 기도하는 온 교회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선한 도움의 손길을 경험케 하소서!
2. (주보 기도 제목)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참된 위로를 받게 하소서!